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문단 편집) == 기타 == 대부분 사람들이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가 무덤 벽화라고 알지만, 사실은 무덤 부장품으로 있던 말다래[* 장니:障泥, 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리는 가죽제 마구]에 그려진 것이다. 초기 신라의 무덤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입구가 없으며 돌방 없이 나무로 널을 짠 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벽화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무덤 내에 '벽'이 없으니 '벽화'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고구려나 백제가 있던 지역에서는 고분 벽화가 여럿 남은 것과 달리 신라는 벽화 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영주 순흥 벽화고분, 영주 순흥 어숙묘, [[신덕왕릉]]에서 벽화가 있었기 때문. 전자는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이고 후자는 신라 말엽의 사례라, 간략하게 설명할 경우 신라사 전체로 보면 사실상 벽화가 없는 것에 가깝다고 치는 것이다.] 당대의 회화라고 할 만한 것은 천마도와 그 외 몇몇 정도로 적은 편이다. 다만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렵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금관]]이나 귀걸이 등 지금까지 남은 부장품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신라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chunmado02.jpg]]}}}||{{{#!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주_대릉원_내_천마총_출토_천마도_장니(국보_제207호,_국립경주박물관_소장) 문화재청.jpg|width=480]]}}}|| 장니의 예시로 올라온 좌측의 사진은 [[신라토기]]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이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의 재료는 자작나무이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당시 신라의 영역이 있었던 남한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고 북방 시베리아에서 자생하는 나무이다. 그러므로 천마도는 당시 신라가 북방과 교역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천마도 말고도 금관 아래에 덧쓰는 모자의 재료도 자작나무로 사용되었다.] 중학교 2학년과 고1, 그리고 수능에서 국사를 볼 작정인 학생이나 공무원 시험을 보는 공시생이라면 이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보기에서 벽화를 골라야 하는데 천마도를 슬쩍 끼워넣는 것은 각종 국사 시험에서 단골 낚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고구려 고분들과 같이 사진으로 내놓고 벽화냐고 낚는 문제는 심심찮게 나온다. 당연히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므로 주의할 것. 영남대학교의 메인 로고이다. 인문관에 가면 크게 그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